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이 12년의 긴 여정을 마치고 법적 제도화라는 새로운 분기점에 섰다. 이름도 거창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40조를 근거로 한 이번 변화는 주민을 행정의 동원 대상에서 지역 정책의 ‘공동 결정자’ 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외형적 성취를 거뒀다.
그러나 현장의 공기는 썩 따뜻하지 않다. 법전 속의 ‘민주적 협치’와 ‘거버넌스’ 라는 화려한 수사가, 정작 7,80대 어르신이 주류인 농촌 지역과 마을에서는 여전히 생경한 ‘외계어’ 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은 ‘행정의 속도’ 와 ‘마을의 시간’ 이 충돌하며 파열음을 낸 시간이었다. 예산을 투입했으니 즉각적인 성과를 내놓으라는 행정의 조급증은,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차례 막걸리 잔을 기울여야 하는 농촌의 호흡과는 달랐다.
정해진 회계연도 내에 실적을 보고해야 하는 공무원의 시계와 공동체의 신뢰를 쌓아가는 마을의 시계는 애초에 맞물릴 수 없는 톱니바퀴였다. 결국 대다수의 주민자치회는 행정의 하부 조직으로 전락했고, 주민들은 ‘자치’ 가 아닌 ‘동원’ 의 피로감을 호소하게 되었다.
주민자치센터, ‘문화 강좌’ 의 틀을 깨고 ‘자치 플랫폼’ 으로
그동안 주민자치 실현의 거점이었던 ‘주민자치센터’ 의 실정 또한 냉정히 바라봐야 한다. 센터는 그간 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농촌의 거점 공간으로 기능해 왔으나, 정작 ‘자치’ 를 실현하는 플랫폼으로서는 낙제점에 가깝다. 프로그램의 90% 이상이 서예나 요가 같은 단순 취미 강좌에 치중되었고, 정작 마을의 현안을 토론하고 결정하는 기능은 부수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주민자치센터는 행정복지센터의 부속 시설이 아니라, 주민자치회가 직접 경영하고 책임지는‘마을 의사당’ 이 되어야 한다. 이번 법 제정의 진정한 의미는 주민자치회에‘법적 인격’을 부여하여, 센터라는 공간의 주인을 행정에서 주민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빌려 쓰는 공간’ 에서 ‘우리가 경영하는 공간’ 으로의 전환 없이는 실질적인 주민 주권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누구를 위한 민주주의인가
현재의 법 제도는 농촌의 특수성을 간과한 채 도시형 모델을 강요하는 측면이 크다. 다수결과 토론이라는 방식은 평생을 관습과 연장자의 권위 속에서 살아온 농촌 공동체에 때로 독이 되었다. 갈등 조정의 기술 없이 던져진 표결은 이웃사촌을 원수로 만들며 공동체 붕괴를 부추길 수 있다.
또한, 고도의 행정 능력을 요구하는 서류 작업과 정산 업무를 농민들에게 떠맡기는 것은 자치가 아니라 ‘행정 업무의 전가’ 다. 마을과 행정 사이를 통역할 전문 활동가(나는 ‘문화이장’ 이라 부르고 싶다)에 대한 정당한 처우와 지위 보장이 없는 법 제정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 일 뿐이다. 진정한 자치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독립적인 예산권과 자치기금 조성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사업’ 보다 ‘사람’ , ‘결과’ 보다 ‘과정’ 이 먼저다
행정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1년 단위의 성과 지표로 마을을 재단하는 조급증을 버리고, 주민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느린 예산’ 을 허용해야 한다. 자치는 실패할 권리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나누는 투박한 대화가 정책이 되고 예산이 되는 경험, 그 민주적 축적만이 소멸해가는 농촌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진짜 자치는 화려한 법전이 아니라 흙먼지 묻은 마을 현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거창한 담론보다는 당장 우리 집 앞의 쓰레기 문제, 고령 어르신들의 식사 배달, 마을 안길의 안전 문제 등 생활 밀착형 의제에서 ‘작은 성공’ 을 맛보게 해야 한다. “내가 말하니 우리 마을이 변하네” 라는 효능감이 7,80대 어르신의 입에서 나올 때, 비로소 자치는 외계어가 아닌 생활어가 된다.
이제 행정은 속도를 멈추고 마을의 시간을 기다려주어야 한다. 주민자치법 통과는 결승선이 아니라, 주민이 제 삶의 주인으로 서는 긴 여정의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