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바나나는 ‘귀한 과일’의 상징이었다. 어린 시절 소풍이나 병문안 때나 겨우 맛볼 수 있었던 바나나는 오랫동안 비싸고 특별한 과일로 기억된다. 그러나 수입 확대와 유통 환경의 변화로 이제는 가장 흔하고 저렴한 과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바나나가 있다. 바로 국내에서 재배한 유기농 바나나다. 일반 바나나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오히려 그 ‘비싼 이유’가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단순히 국산이라는 의미를 넘어, 자연의 순환을 존중하면서 재배했다는 점, 그리고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농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안성에서 생산된 친환경 바나나를 임산부 꾸러미로 공급했고, 전남 신안의 친환경 바나나는 최근 경기도학교급식에 활용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먹거리를 바라보는 소비자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얼마나 양이 많고 저렴한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디에서, 언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나아가 ‘환경과 생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함께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건강과 환경, 기후를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식탁 위 음식이 어떻게 생산·유통되어 식탁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깊이 생각할 기회는 많지 않다. 가격과 속도, 편리함이 우선되는 소비 속에서 ‘유기농’은 때로 비싸고 특별한 선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유기농은 단순히 비싼 농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과 환경, 그리고 미래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약속에 가깝다.

유기농업은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자연의 순환 원리를 존중하는 전통적인 농업 방식이다. 흙 속 미생물과 지렁이가 살아 숨 쉬고,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건강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다. 조금 느리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자연과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눈앞의 생산량만을 우선하기보다 토양과 물, 생태계를 함께 지켜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이상기후는 더 이상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이상저온 등 기후변화는 농업 현장을 가장 먼저 흔들고 있다. 이제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농업을 넘어 인류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다. 단순히 대량 생산과 소비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기농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생산과 소비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연과 먹거리의 소중한 가치를 다음 세대가 직접 이해하고 경험하는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어린 시절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자연의 변화를 경험하는 일, 먹거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생태 감수성과 건강한 식습관을 키우는 중요한 과정이다. 자연과 먹거리를 가까이 경험한 아이들은 먹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환경과 연결된 삶의 선택임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6월 광주 곤지암에 ‘경기 유기농문화 체험센터’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유기농산물이 자라는 과정과 환경, 생태, 기후 먹거리의 가치를 쉽고 재미있게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먹거리를 통해 자연과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유기농 문화 플랫폼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우리는 종종 빠른 성장과 효율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자기 속도로 자라야 한다. 유기농은 그 느림 속에서 건강과 환경, 그리고 사람의 가치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오늘 우리의 작은 선택 하나가 농업을 살리고, 아이들의 미래 식탁을 바꾸며, 더 건강한 사회와 지구를 만드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이제 유기농은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우리 모두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가치가 되어야 한다. 자연을 지키는 일이 결국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식탁이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창수 경기도농수산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