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규   경기농수산진흥원 공공급식본부장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마농의 샘〉을 오랜만에 떠올린다. 이야기는 뜻밖에 단순하다. 한 마을에 숨겨진 샘 하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 그 샘을 돌로 막아버림으로써 이웃의 밭을 말라 죽게 하고, 결국 한 가족의 삶 전체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물줄기 하나가 막히는 것은 단지 그해 농사가 흉년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존엄과 생계, 대를 이어온 땅에 대한 권리, 그리고 이웃끼리 서로에게 지켜야 했던 최소한의 신의의 문제였다. 영화 속 늙은 농부는 갈라진 밭고랑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조금씩 미쳐간다. 그는 몸으로 보여준다. 물이 없으면 땅은 죽고, 땅이 죽으면 그 땅에 기대어 살던 사람도 함께 죽는다는 것을.

뜨거운 우리의 논과 밭에서도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다만 지금의 물줄기는 누군가의 심술이 아니라, 중간을 잃어버린 기후의 폭주와 제도의 틈 사이에서 널뛰고 있다. 얼마 전까지 바닥을 드러내던 저수지와 타들어가던 논밭 위로, 이번엔 제방을 무너뜨리고 삶터와 일터를 짓밟는 폭우가 쏟아졌다.

극심한 폭염과 가뭄 끝에 찾아온 것은 파괴적인 수해였다. 거기에 또 하나의 목마름과 치열한 셈법이 조용히 더해졌다. 반도체 산업단지 유치 경쟁이다. 지자체마다 첨단 산업단지를 끌어오려 하고, 막대한 공업용수 확보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반도체 기판을 세정하는 초순수의 확보라는 국가 미래 산업의 이름 아래 상류의 물그릇은 산업의 몫으로 기울고, 하류의 논은 가뭄 때는 극심한 물 부족을, 폭우 때는 집중 배수구역이라는 이중의 위험을 떠안는다. 정책의 우선순위가 정해질 때, 반도체 공장의 가동률과 농민의 일상은 좀처럼 같은 저울 위에 오르지 못한다.

그리고 그 저울의 기울어짐 끝에서, 하류의 농업과 농민은 조용히 존망의 갈림길에 선다. 가뭄으로 말라 죽고 폭우로 휩쓸려간 논은 그해 소출을 앗아가고, 연속된 재해는 다음 해 농사의 종잣돈 마저 흔든다. 몇 해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젊은이는 떠나고, 남은 노인들은 물꼬 앞에서 파탄 난 하늘만 올려다본다. 첨단 산업단지는 지역의 미래를 약속하지만, 극단적인 기후와 치우친 자원 배분 속에서 조용히 문을 닫는 농가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농지는 그저 하나의 산업 부문이 아니다. 농업의 근원이 농지라면, 농지의 근원은 물이다. 이제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잔인한 현실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적당한 비’ 라는 중간지대는 사라졌다.

타들어 가는 폭염이 아니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폭우라는 극단만이 남았다. 이 유한하고도 위험해진 물을 어떻게 치수(治水)하고 공정하게 나누며 관리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시대 물관리 정책의 본질이다. 정책 하나가 길을 잃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논이 말라붙거나 물에 잠기고, 결국 한 가족의 삶 전체가 흔들린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수도꼭지를 틀면 나오는 물, 그러나 갈라진 저수지 바닥과 흙탕물에 잠긴 들녘을 번갈아 겪으며, 물이란 유한하면서도 때로는 무서운 자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극단으로 치닫는 기후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임기응변이나 정치적 논리가 아닌, 치수와 배수, 균형을 아우르는 근본적인 원칙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비의 양이 아니라, 이 극단적인 날씨를 견뎌내고 물을 공정하게 관리할 지혜다.

그러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물의 주인은 누구인가. 수자원공사인가, 농어촌공사인가, 산업단지를 유치한 지방정부인가, 아니면 물꼬를 살피는 농민인가. 물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마지막 공유지다. 가뭄에는 목을 축이고, 폭우에는 생명을 지키는 제도와 정책만이 그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빗줄기가 그친 마당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극단으로 내닫는 기후의 위기 속에서, 더 이상‘중간’은 없다. 이 여름, 폭염과 폭우를 견뎌내야 하는 논에도, 산업단지에도,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내일에도, 과하거나 모자라지 않게 생명을 살리는 물줄기 하나가 절실하다.

마농의 샘을 막았던 돌을 치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듯,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경고 앞에 우리가 대가를 치르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다만 그전에 우리의 논이, 그리고 그 땅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먼저 다 무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