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시에는 전기가 가면 ㅇㅇ시에는 무엇이 남는가?”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보았던 현수막 문구가 가슴에 깊게 박힌다. 보통 재개발 지역에서 내거는 거친 현수막과는 다르게 보는 순간 많은 것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하다는 14.8GW의 전력과 2050년 기준 하루 107.2만㎥의 용수를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의 예측의 뒤편에는 클러스터로 향하는 초고압 송전선로와 송전탑, 전력 인프라 기피 시설이 인근 지역에 남게 되고, 이는 불가피한 지역 간 갈등의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반도체의 힘은 가히 막강하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피지컬AI 등 3대 메가 프로젝트 추진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조성 단지를 둘러싼 정치권의 샅바싸움은 차치하더라도 이 발표만큼 국민을 짜릿하게 만드는 뉴스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이러한 국가적 호재에도 불구하고 농업계에서는 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신규 반도체 산업단지는 전력망과 용수망의 인프라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800조 원급의 투자가 예정된 서남권 지역만 보면 송배전 설비가 부족해 영농형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를 확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가 집어삼킬 폭풍이 농업, 농촌에 어떤 경로로 접근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아젠다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농업, 농촌에 대한 설계에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산 문제 또한 그 선상에 있다. 2030년까지 햇빛소득마을을 2,500곳으로 급격히 늘리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전력 계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 수용성을 담보하려는 방안 없이 목표치에만 맞추는 전략은 그 피해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남을 가능성이 크다.
농지 활용을 위한 농지 전수조사 과정에서도 비농업인 농지소유를 걸러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고령농의 안정적인 은퇴와 청년농으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이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엄청난 양의 전력과 물 공급도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반도체 투자 확대와 그동안 농업 강대국이라는 일컬어지는 국가와의 FTA 추진 과정을 목도해 온 실무자로서 두 사안이 겹쳐 보이는 것은 정부가 앞세운 ‘국가적 사활’ 이라는 당위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FTA 피해 상쇄를 위해 당시 10년간 총 1조 원을 만들어 지원하겠다는 ‘무역이득공유제’ 는 기업의 반발 속에 실체 없이 사라졌고, 시간이 지난 지금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이 3개월간 그것도 매일 1조 원씩 벌었다는 기사를 보면서 농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헛헛함이 느껴진다.
규제를 외치는 자리와 규제에 서 있는 자리, 누구도 멈출 생각이 없는 경쟁에 놓여 있는 지금이 엄청난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결정을 하는 데 있어 농촌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며 농촌이 스스로의 결정을 미루고 외부로 그 힘을 미루는 순간 그 방아쇠는 다시 농업, 농촌을 향하게 될 것이다. 수용을 하되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 농림축산 비서관이 최근 정책 토론회에서 “정책 수혜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정책은 정책이 아니다” 라는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강조했다고 한다. 비서관이 “비판적인 내용도 좋으니 구체적인 정책 제안은 적극 검토하겠다” 라는 수용 의지를 밝힌 만큼 현장에서 제기되는 신중한 접근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